마리아 요제파 폰 작센 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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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리아 요제파 폰 작센 왕녀는 작센 왕 게오르크와 포르투갈 여왕 마리아 2세의 딸인 마리아 안나의 차녀로, 오스트리아 대공 오토 프란츠와 결혼했다. 그녀는 독실한 가톨릭 신앙심으로 남편의 방탕한 생활 속에서도 결혼 생활을 유지했으며, 두 아들 카를 1세와 막시밀리안 오이겐을 두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부상병을 간호했고, 1919년에는 오스트리아를 떠나 망명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바이에른에서 사망했으며, 빈의 카푸친 납골당에 남편 곁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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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요제파 폰 작센 왕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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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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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마리아 요제파 루이제 필리피네 엘리자베트 피아 앙겔리카 마르가레테 폰 작센 |
출생 | 1867년 5월 31일 |
출생지 | 독일, 작센 왕국, 드레스덴 |
사망 | 1944년 5월 28일 |
사망지 | 나치 독일, 바이에른주, 미텔프랑켄 현, 에를랑겐 |
매장지 | 오스트리아, 빈, 카푸친 납골당 |
배우자 | 오스트리아 대공오토 프란츠 (1886년 결혼, 1906년 사별) |
자녀 | 카를 1세 막시밀리안 오이겐 |
왕가 | 베틴가 (알베르티네 가문) |
아버지 | 작센의 게오르크 왕 |
어머니 | 마리아 아나 데 브라간사 |
작위 | |
혼전 | 작센의 공주 |
혼후 | 오스트리아 대공비 |
기타 정보 |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2. 생애
마리아 요제파는 작센의 왕 게오르크와 포르투갈의 마리아 안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오빠는 마지막 작센 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이다.
1886년, 오스트리아 대공 오토 프란츠와 결혼하여 훗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는 카를과 막시밀리안 오이겐 두 아들을 두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남편 오토 프란츠 대공과의 어려운 결혼 생활 속에서도 신앙심에 의지하며 가정을 지키려 노력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빈의 아우가르텐 궁전에서 부상병들을 돌보는 활동에 참여했다. 1919년 제국이 해체되자 아들 카를 1세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올랐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바이에른주에서 사망하였으며, 유해는 빈의 카푸친 납골당에 안장되었다.
2. 1. 어린 시절
마리아 요제파 루이제 필리피나 엘리자베트 피아 안젤리카 마르가레타는 미래의 작센 국왕 게오르크 폰 작센 (1832–1904)과 포르투갈의 마리아 안나 인판타 (1843–1884)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 안나는 포르투갈 여왕 마리아 2세의 딸이었다. 마지막 작센 왕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는 그녀의 오빠이다. 마리아 요제파는 매우 경건한 가톨릭 신자였다.2. 2. 결혼 생활

1886년 10월 2일, 열아홉 살의 나이에 오스트리아 대공 오토 프란츠와 결혼했다. 그는 "미남 대공"(der Schöneger)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훗날 사라예보에서 암살된 오스트리아 대공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동생이었다. 오토 프란츠 대공은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지만, 동시에 악명 높은 바람둥이였으며 '화려한 대공'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마리아 요제파는 매우 경건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녀는 남편의 잦은 불륜과 방탕한 생활로 인한 결혼 생활의 고통을 강한 종교적 신념의 힘으로 견뎌냈다. 남편이 집을 자주 비우는 상황은 오히려 그녀가 두 아들, 카를 프란츠 요제프(훗날의 황제 카를 1세)와 막시밀리안 오이겐을 아버지의 좋지 않은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결혼 생활 중, 마리아 요제파는 배우 오토 트레스러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트레스러는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가 남편의 행실 때문에 힘들어하는 그녀를 안타깝게 여겨 직접 소개해 준 인물이었다. 마리아 요제파는 종종 트레스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그는 때때로 현관에서 그녀의 남편이나 그의 친구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남편 오토 프란츠 대공이 오랜 방탕한 생활 끝에 사망했을 때, 마리아 요제파는 지나친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절제된 태도로 오히려 주변의 존경을 받았다. 과부가 된 후, 그녀는 과부로서의 적절한 처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인지 트레스러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2. 3. 제1차 세계 대전과 망명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동안 마리아 요제파는 빈의 아우가르텐 궁전을 야전 병원으로 개조하여 부상병들을 간호하는 데 헌신했다.1918년 전쟁이 끝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는 몰락했다. 1919년, 마리아 요제파는 아들인 마지막 황제 카를 1세와 며느리 치타 황후 일가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떠나 망명길에 올랐다. 그녀는 처음에는 스위스에서 지내다가 1921년부터는 독일에서 여생을 보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4년, 마리아 요제파는 76세의 나이로 바이에른주에 있는 빌덴바르트 성(Schloss Wildenwartdeu)에서 사망했다. 이곳은 바이에른 왕가 일부 구성원의 소유지였다. 그녀의 유해는 빈의 카푸친 납골당(황실 묘소)에 안장되어 남편 오토 프란츠 곁에 묻혔다.
2. 4. 죽음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바이에른주 슐로스 빌덴바르트에서 사망했다. 유해는 빈의 카푸친 납골당에 남편 곁에 안장되었다.3. 자녀
1916년부터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를 역임했다.
